My opinion

한국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서평

Min Bae 2011. 4. 14. 12:12

 

         역사교사   배 민  

 

한국근현대사를 작년부터 가르치고 있다. 학교에서 세계사를 작년까지 2년간 가르치다 올해는 다른 선생님이 가르치고 있고 내년부터는 아예 우리학교에서 세계사는 사라져버린다. 한국사 교육이 시급하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엔 역사를 비정상적으로 배우는 것도 역시 문제긴 문제다. 우리 학교 뿐 아니라 세계사 교육은 앞으로 사라지는 게 대세인 것같다. 더구나 한국근현대사와 한국사 교과서는 역사학 교재로서 역사적 사고력의 배양 보다는 국민 일체감 고양을 위한 정신교육 교재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것도, 내적인 일체감 고양을 위해 외부에 특정한 적을 만들어 증오감을 투사하는, 또는 정체성 확립을 위해 우리역사 안의 특정한 요소들을 악으로 규정짓는, 선과 악의 이분법 구도와 투쟁논리에 입각해서 서술되어 있다. 즉 우리안의 밝은 면을 빛내기 위해 외부세계와 우리안의 인정하기 싫은 특정 요소들을 악으로 만들어 투사하는 정도의 저급한 심리적 기재를 활용한 셈이다.

 

주변국에 대한 적개심으로 사실상 객관적인 논조를 상실한 국내 역사 교과서들을 일본은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는다. 물론 일본 극우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는 하겠지만 일본 전체적으로는 별 신경도 안 쓴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는 우리는 일본에 대한 피해심리에서 영원토록 벗어나지 못하는게 아닐까. 우리가 먼저 현재 북한 정권과도 매우 유사했던 (정부주도의 국제범죄를 상시로 저지르는 범죄국가가 아니라는 점만 빼고) 당시 조선후기의 극단적으로 고립된 페쇄적이고 부패한 사회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자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 빛과 어두움을 함께 알고 있어야 한다. 김홍도의 풍속화에 나오는 익살맞은 조선인들이 당시 조선의 모습의 전부가 아닌 것이다.

 

일본의 무력팽창외교정책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서 일본 대외 정책을 군부가 장악하고 그런 군부의 무력팽창정책에 천황을 포함한 대다수의 일본국민들이 편승하게 되었는가.. 라는 일본사 지식도 학습할 필요가 있다. 먼 나라도 아니고 우리와 직접 관련된 역사를 공유하는 바로 옆 나라의 역사다. 더 깊이 들어가다보면 일본 근대의 자유민권 사상가들의 사상이 어떻게 해서 대외적으로는 침략적인 일본외교를 묵인하고 방조하게 되었는가라는 다소 심오한 사회심리학적 문제에 까지도 이르게 된다. 상대방을 비판하고 욕하는 건 쉽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가지기 쉽지 않다. 적어도 일본 메이지 시대 자유주의 철학자들은 그들이 볼 때 억울한 조약을 체결하게끔 강요한 유럽의 열강들에 대해서 이 정도의 탐구하고 연구하는 자세는 있었다. 이러한 배경 학습은 전혀 없이 (우리 교과서에서 일본의 제국의회나 내각, 군부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일본의 정치와 사회 내부는 무시하고 그냥 일본은 악의 나라다.. 라는 전제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내용이 얼마나 주관적인 정신교육 교재에 가까운지를 보여준다. 그저 소단원, 중단원, 대단원 제목이 죄다 약탈 아니면 수탈, 침략.. 등등이다. 정말 우리는 집단적으로 희생당하고 공격당하기만 한 한(恨)의 민족인 것인가. 사실은 얄팍하게 더 잔머리 굴리려다가 대략 낭패 본 조선정부의 모습이 우리의 근현대사인건 아닐까.

 

한국 현대사를 지배하는 패러다임 역시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흑백논리다. 악의 지배에 맞서 싸운 선한 자들의 승리의 역사.. 민주항쟁이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는 역사... 민주화란 도대체 뭘까? 애당초 민주주의란 개념 또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대표적인 모호한 개념이다. 정치에서 어찌보면 권력집단들끼리 이해관계를 놓고 싸우라고 만들어놓은 공간이 의회인데, 지금 우리 교과서 현대사 부분의 논지는.. 우리국민들은 제국주의적 패권에 종속된 권위주의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뤄낸 위대한 사람들이다 라는 것이다. 과연.. 군사정권이라고 악의 집단이고 문민정부는 선한 집단일까.. 권력이 견제되고 부패를 방지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지 정치에 그 외의 다른 이상적 가치를 담으려고 할 때.. 정치는 결국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의 화려한 수사학적 언변과 선동의 희생양이된다.

 

과거에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지구상의 악의 축으로 세 국가를 지목한 적이 있었다. 정말 그 세 나라가 없어지면, 또 그런 식으로 악의 국가들을 하나씩 처단해나간다고 해서 지구상에는 선한 국가만 존재하게 될 날이 올까. 유럽에서는 (국내에선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인간의 역사를 한단계 진보시켰다고 평가받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이미 20세기 내내 알프레드 코반을 비롯한 많은 역사가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해석과 평가를 자유롭게 내놓았다. 역사적 사실은 누구에 의해서든 재해석 될 수 있는 것이고 악에 맞서는 선의 투쟁이라는 하나의 해석을 고집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얼마나 독선적인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다른 세상에 있지 않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얘기는 우리나라의 세계사 교육에도 적용될 수 있다. 가령 예를 들어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외교정책이 1870년대 이후 세계적인 자유무역 퇴조의 흐름 속에서 결국 중상주의 보호무역 쪽으로 흘러가게 되고 본격적인 식민지 경쟁과 세계대전을 초래하였다는.. 경제사적으로 그다지 난해하지도 않은, 하지만 중요한, 내용이 사실상 의도적으로 간과되어 있다. 그저 우리나라 세계사 교과서도 천편일률적으로 서구열강의 아시아 침략.. 이런 정치사의 개념적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서양 근현대사의 3대 사조인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nationalism에 대해 우리 학생은, 우리국민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국제화 시대의 교육은 말로만 떠든다고 되지 않는다.. 자국 역사의 명암을 온전히 파악하고, 세계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려고 최소한 시도는 해보는 것이, 일의 우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