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opinion

[일반논문] 한국에 있어서 현대사 분쟁

Min Bae 2011. 5. 31. 16:22



이영훈 교수의 글이다. 이분의 글은 자칭 진보들의 증오와 적대감의 표적이며 비아냥과 조롱의 대상이다.

그들(자칭 진보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안타까운 대한민국의 자화상임을 알까. 



[일반논문] 한국에 있어서 현대사 분쟁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 교수)




Ⅰ.‘건국 60주년’을 둘러싼 정치와 사회의 분열


한국에 있어서 8월 15일은 4대 국경일 중의 하나인 광복절이다. 광복절은 국경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날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광복절이 무엇을 기념하는 날인지 잘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다. 이는 매우 이상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다. 1945년 8월 15일 한국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었다. 그 뒤 3년간 남한과 북한은 미국과 소련의 지배를 받았다. 1948년 8월 15일 남한에서는 대한민국이, 한 달 뒤 북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동시에 민족의 분단도 확정되었다. 광복절은 이 가운데 어느 것을 기억하기 위한 것인가.
한국인들에게 60세 생일은 환갑이라 하여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2007년부터 한국의 우파 또는 보수파(이후 우파로 칭함) 지식인이나 정치세력은 200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환갑이니까‘건국 60주년’으로 특별히 기념할 필요가 있다고 정부에 건의하였다. 당시의 노무현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를 성립시킨 한국의 좌파 또는 진보파(이하 좌파로 칭함) 지식인이나 정치세력은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건국’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높이 평가하지 않는 입장이다. 반면에 2008년 2월 우파의 지지를 받아 성립한 이명박 정부는 그러한 건의를 받아들여 동년의 광복절을‘건국 60주년’으로 경축하였다. 그러자 야당으로 입장이 바뀐 정치세력이 기념식에의 참여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별도의 장소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가졌다.
정치계만이 아니라 학계와 언론계도‘건국 60주년’의 기념을 둘러싸고 대립하였다. 우파 지식인들은 그들이 주도한 국제학술회의에서 1948년 8월 15일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기초한 새로운 국가가 건립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좌파에 속하는, 주로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지식인들은 대한민국의 진정한 출발점은 1919년의 3·1운동 후 중국에서 성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1948년 8월 15일 남한에 세워진 것은 그 국가의 계보를 잇는‘남한만의 단독정부’였다. 그 근거로서 그들은 현행 헌법의 전문이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그에 대해 우파 지식인들은 임시정부에 관한 헌법 전문의 언급은 건국이념의 역사적 기원과 정통성을 밝힌 데 그 취지가 있을 뿐, 그것을 근거로 임시정부를 역사적 실체로서 국가로 간주할 수는 없다고 반박하였다.
한 나라가 자신의 역사적 성립을 둘러싸고 이처럼 심한 정치적 학술적 대립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2009년 10월 중국은 성장 일로의 국력을 세계에 과시함과 더불어 국가에 대한 국민의 자긍심을 고무할 의도로‘건국 60주년’의 경축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그에 비한다면, 한국 현대사의 경우는 자신의 건국사에 관한 기억을 만들고 발전시킴에 특별한 권위를 지닌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건국사에 관한 국민의 기억은 상이한 이념의 정치세력들이 추구한 상이한 기억으로 분열하고 대립해왔다.

이하 본문 내용 생략..



Ⅴ. 맺음말

1948년 8월 15일 국내외에 선포된 대한민국의‘정부수립’은 그를 둘러싼 국내외의 정치적 조건에서‘건국’이라 불러도 별다른 하자가 없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1960년대 이후 자기야말로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고 있다고 믿는 유력 정치가나 정치세력에 의해 망각되거나 부정되어 왔다. 2003년 이래 그들의 건국사를 재발견했다고 믿는 우파와 건국의 역사적 기원을 1919년의 임시정부에서 찾는 좌파 사이에 정치색이 강한 논쟁이 벌어져왔다. 이 논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한국 정치의 동향과 밀접한 연관을 맺을 터이다. 모든 역사적 기억은 정치적이다. 이 말이 건국사를 둘러싼 한국에서의 논쟁만큼 절실하게 들어맞는 다른 예를 찾기도 힘들 것이다.
한국인들이 그들의 원래 건국을 쉽게 망각한 것은 길게 보아 18세기부터 이어지는 그들의 전통 문명과 1876년 개항 이후 밀려들어온 서유럽 기원의 근대문명 간의 상호 갈등이 실로 간단하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건국의 이념을 자신의 정신적·물질적 생활의 기초 원리로 수용하는 시민적 중산층의 성립은 1948년 당시 정말 한줌의 무리에 불과하였다. 그마저 식민지기에 일제의 지배에 협력했다는 정치적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들이 아니었다.
위 논쟁에 처음부터 깊숙이 개입하였던 필자에게 논쟁이 안겨준 선물은 실로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의 좌파와 우파는 서로를 이해하고 비판함에 필요한 공동의 언어를 소유하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근대’,‘근대적 인간’,‘사회’,‘국가’,‘민족’등등, 논쟁을 엮어가는 키워드들이 얼마나 상위(相違)하거나 자의적인 개념으로 구사되고 있는지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예컨대 헌법소원을 제기한 역사학자들은, 일제하에서도 조선왕조, 대한제국, 임시정부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정통적 흐름은 이어져 왔으며, 이에 1948년의 건국을 인정하게 되면 수천 년을 이어져 온 민족의 유구한 역사에 중대한 단절이 생기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언어생활에서‘민족’과‘국가’는 등가이며, ‘근대국가’는 없는 편이다.
전교조의 지도자들은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가“인간의 본성은 이기심”이라고 한 대목을 두고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야만적 폭언이라고 반발하였는데, 그 점은 인간의 본성을 그렇게 알아온 필자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필자는 그들을 통해 많은 한국인들에게‘근대적 개인’이란‘민족’이나‘민중’과 같은 집단생존의 이념과 그에 기초한 평등주의적 윤리를 공유하는 개체로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필자가 보기에 이 같은 국가관과 인간관은 그 기초 논리에서 5~19세기 전통시대의 지배이념인 조선성리학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대안교과서의 주장대로 지난 20세기는 한국인들이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는‘문명사의 대전환’의 시대였다. ‘대전환’은 아직 진행 중이며, 그 귀추가 어떻게 결정될지는 극히 불확정적인 것 같다. 목하 진행 중인 논쟁은 그를 둘러싼 온갖 정치색을 벗겨낼 때 연구자들에게 그들이 진정 연구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위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