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opinion

월간숭의에 실린 서평(2010.12.30)

Min Bae 2011. 3. 10. 17:15

- 역사교사의 책 읽기

88만원세대의 저자 우석훈의 책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 대한 조용한 비판

 

역사교사 배민

 

저자는 오늘의 우리나라 20대가 고독한 저격수와 같다는 비유를 펼친다. 한 예로 프랑스 대학생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프랑스에서 첫 번째 고용에 한해 사업주가 언제든 해고할 수 있도록 만든 법이 프랑스의 생애최초고용법인데 이 법을 프랑스 대학생들이 파리 전역에서 들고 일어나 철회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왜 이렇게 못하고 있는가, 마치 고독한 저격수와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법이 그렇게 그 사회 전체에 해를 가져오는 독약이었을까. 또 그런 식의 다수의 의사대로 경제적 의사결정을 하게 된 것이 그 다수를 포함한 그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될까. 이 책 전체를 읽어보면 결국 저자의 주장은 합리적 결정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 약자들을 잘 껴안아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인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일단 합리적 결정이라는 것을 누가 내리는지도 어떻게 내리는지도 애매하지만, 잘 따져보면 정치적 약자란 선거권을 가진 인구수로 볼 때 소수집단을 말하고 경제적 약자는 소득이 낮은 빈민을 말한다. 자,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돕는가의 방식과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각의 차이에 있는 것이다. 단순히 저자의 의식대로 신자유주의를 악마가 내린 굴레로 몰아가는 사고방식으로는 문제를 풀어나가기 힘든 것이다.

 

서문에 나오는 조한혜정 교수의 비유대로 교육이 실종된 학교에서 아이들을 구해내는 꿈을 꾸고,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 시장에서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것이 과연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일까. “하고 싶은 일로 돈도 벌고 사회에 좋은 일도 하는 20대 사회적 기업가들로 세상의 빛깔이 달라져 버린 날을 상상한다”지만 그럼 사회적 기업 노선을 따르지 않는 기업들은 그런 이유로 정부에 의해 불이익을 받게 되어도 약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순순히 따라야 하는 건가. 저자와 같은 이들이 근대 유럽사에 등장하는 핵심 사상인 자유주의를 제쳐놓고 굳이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즐겨 쓰는 이유는 경쟁의 원리가 상품과 자본 시장을 넘어서 교육과 의료 등 사회 전반에 파급되는 것을 혐오하는 심리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씩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유주의라는 기본 사상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본다.

 

저자가 그토록 애정을 가진 우리나라 20대 대학생들을 비롯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다수는 자유주의에 대한 공포와 편견을 가진 경우가 많다. 특히 중고등학교 생활을 막 보내고 입학한 대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이 그런 이유 중 하나는 경쟁을 마치 전쟁과 혼동하는데서 연유한다. 일례로 우리나라에서는 입시 경쟁과 학력 경쟁이 미국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느껴진다. 사실 대학교는 정말 공부를 원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고 나이에 상관없이 공부하고 싶을 때 가면 되는 곳인 것이다. 성적 떨어졌다고 죽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종목에서 경쟁하도록 강요당했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경쟁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때에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 때 의미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경쟁은 의사 선택의 자유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하기도 싫은 달리기 경주를 해야 한다면 그건 경쟁이 아니라 강제노동이다. 사람은 자신이 잘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시키지 않아도 경쟁한다.

 

자유주의란 경제사적 관점에서 얘기하면 자본주의, 즉 시장경제체제를 시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정치체제다. 시장에서는 신분도, 인종도, 민족도 없다. 보다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자가 더 돈을 많이 벌고 그 결과 인류는 피 흘리지 않고도 더 자유로와지는 것이다. 혁명가가 단두대를 만들고 공산주의자가 시베리아 수용소를 만들 때 자유주의자는 냉장고를 만들었다.

 

어느 사회건 다수는 경쟁을 피곤하게 생각하며 경쟁이 완화되길 바란다. 그래서 다수의 정치적 의사대로 경쟁을 계속 완화시키는 사회를 만들어간다면 정말 좋은 사회가 이루어질까. 사실상 정치인들은 시키지 않아도 그런 방향으로 입법을 해나갈 것이다. 경쟁이 완화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자유주의자들에 비하면 정치적 강자이고, 임기가 제한되어 있는 정치인들은 결코 정치적 강자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세기 영국이 아니다. 자유주의 국가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것이다.

 

자, 그렇다면 과연 그러한 정치적 논리에 따라 만들어진 분배적 성격의 복지법안들은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이 중상주의 보호무역이나 공산주의 통제경제의 두 극단 사이에서 치열하게 시장의 자율성, 즉 경쟁의 원리를 수호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정치인들에겐 그런 건 관심 밖이다. 정치적 논리에 따라 만들어지는 법들은 대개 경제학의 핵심 원리인 비용 개념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래서 분배정의를 추구하는 법이 장기적으로 근로의욕을 위축시키고 그래서 모두에게 불리하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회민주주의 정책의 부작용들에 대해 아마도 자유주의는 세계사적으로 그래왔던 것처럼,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 시장을 통해 경험론적으로 그 비용을 치르게 하는 방식으로 문제점을 개선해 나갈 것이다. 저자처럼 혁명정신으로 무장해서 이상적인 세상을 가상으로 설계해놓고 그것에 현실이 접근해 가야 한다고 정치적 선동가들과 입법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주장하겠지만 말이다.

 

 

* 위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사실은 학생들에게 세계사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바람직한 사회는 어떤 사회여야 하는가라는 합리론적 사고뿐만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을 통찰하는 경험론적 사고를 함께 할 수 있게 될 때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보다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세계사 과목은 수능 사탐과목에서 가장 선택 비율이 낮은 과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