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

민담

Min Bae 2012. 9. 27. 12:26


안과 밤에 빨래하는 여자








그 날 아침, 안은 자신이 직접 만든 활과 비둘기 깃털이 달린 화살 한 줌을 어깨에 비스듬히 맸다. 그리고 굵직한 허리띠에는 나무 단검도 꽂았다.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걸! 이웃 사람들은 안을 두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버지는 오늘 늦게 돌아오실 테니 그녀에게는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빵과 치즈를 조금 가지고 에트랑글르 세브르를 향해 떠났다.

에트랑글르 세브르. 이상한 이름의 작은 마을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안은 그 비밀을 벗겨 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녀는 늘 갖고 다니는 피리도 가지고 갔다.

그녀는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곧 실망했다. 에트랑글르 세브르는 그저 평범한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안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 왔다. 벌써 늦었다. 그녀가 미루나무 숲에 다다랐을 때는 어둠이 내렸다. 새들도 조용해졌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안이 없는 것을 보고 걱정할 텐데... 아버지는 야단은 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매일 저녁 아버지에게 낮 동안 보고 겪은 일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이날 저녁은 별다른 이야깃 거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발견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다리는 무겁고 발이 아팠다.

마침내 그녀는 가까운 마을에 들어섰다. 대부분의 집들은 덧창이 내려져 있었다. 그렇지 않은 집은 닫혀진 커튼 뒤로 등불과 사람 그림자가 비춰 보였다. 아이들이 뛰어 다니는 소리와 부엌에서 국자로 스프를 뜨는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야단치는 소리가 들렸다. 안은 어머니가 없었다. 그녀가 발길을 재촉할 수록 길은 더욱 멀고 황량하고 어둡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강가에 도착했다. 잉드르 강 위로 구부정하고 좁다란 다리 하나가 놓여있었다. 이 오래된 다리는 아치 모양이었다. 그 앞에는 그녀가 사는 마을이 있었다. 비탈진 길을 몇 발자국만 가면 그녀의 집이다. 강 이쪽에는 벌판과 과수원이 펼쳐져 있었다. 강가에는 닳고 오래된 돌이 비스듬히 놓인 빨래터 두세 군데가 있었다. 이 빨래터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곳이었다. 강둑을 따라 오솔길이 나 있었다. 안은 옆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다리 위로 걸음을 옮겼다. 강물은 아주 검었다. 강물은 아래 쪽에서 냉기가 흘러나오는 눅눅하고 긴 혀 같았다. 안은 다리의 굽어진 곳을 지나 건너편에 거의 이르렀다. 바로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마치 빨랫감을 돌에 부딪치는 소리, 어떤 것은 찰박찰박 두드리는 소리, 물이 철벅거리는 소리, 그리고 빨래를 짤 때 나는 소리였다. 이 시간에 어느 여자가 빨래를 한단 말인가? 이런 어둠 속에서?

안은 망설였다. 물론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고, 계속 걸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했다. 지금 겁을 내면, 앞으로 다시는 이곳을 지나가지 못하게 될 것이 아닌가? 그녀는 무슨 일인지 보려고 다리 난간으로 다가갔다. 일단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래쪽 벌판에 가벼운 빨래가 연기처럼 바람에 휘날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강가를 보니 어떤 사람의 형체가 뿌연 누더기를 비틀어 짜고 다시 물 속에 담갔다가 두드리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건져서는 마치 빨랫줄에 걸어 말리려는 것처럼 우아한 몸놀림으로 공중으로 던졌다. 하얗고 기다란 여자가 빨래를 하느라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팔을 내젓고 있었다. 갑자기 그 여자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안에게는 그녀가 안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때 안이 느꼈던 것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무서웠다. 하지만 목구멍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올라왔다. 안은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여자도 바람에 흔들리듯이 흐느적대면서 안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녀는 안을 끌어 당기고 있었다. 안은 그녀가 있는 강둑으로 내려가면 행복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되었다. 왜그런지는 안 자신도 알지 못했다. 안은 정신을 차리고 있는 힘껏 집을 향해 달렸다.

안은 부엌으로 들어가기 전에 멈추어 서서 태연한 척하며 문을 살짝 열었다. 아버지가 매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채 서 있었다. 안이 먼저 말을 했다.

“아버지, 죄송해요. 늦었죠? 에트랑글르 세브르에 가 보았어요. 저는 그곳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그래서 최대한 빨리 돌아온 거예요. 힘이 다 빠져 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안은 마치 전쟁터에 돌아온 군인처럼 한숨을 내쉬면서 의자에 걸터 앉았다. 아버지는 그저 놀라서 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밤늦게 쏘다니고 돌아오는 것은 안돼! 이제 스프나 먹어라.”

아버지는 국자로 스프를 떠 주었다.

그릇을 거의 다 비웠을 때, 안은 말을 꺼냈다.

“아버지, 저기요. 조금 전에, 오래된 다리를 건너 오는데요. 강가에서 이상한 것을 봤어요.”

안은 본 것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까 목구멍에 뭔가 차올랐던 느낌이나, 강 둑으로 내려가고 싶었던 감정은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딸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엄숙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마치 딸이 말하지 않는 부분을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말을 마치자 아버지가 말했다.

“밤에 빨래하는 여자를 보았구나. 참 이상하다. 요즘은 보기 드문데..., 너에게 그런 여자가 보인 것이 아마 우연은 아닌 듯싶다.”

“밤에 빨래하는 여자가 누구예요?”

“망령들이지. 죽은 여자들인데, 안식을 찾지 못한 거야. 그래서 강가를 헤메지. 그 여자들은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들 하지.”

“그런데 왜 빨래를 하지요?”

“아무도 몰라. 그 여자들에게는 얽힌 전설들이 많아. 뭔가 크나큰 고통을 씻으려고 하는 것 같아. 자신들의 슬픔이 강물에 떠내려 가기를 바라면서, 영혼을 빨아서 짜는 거지. 그 여자가 너한테 말을 하던? 안! 너한테 말을 하더냐?”

“아니요. 말은 하지 않았어요.”

“그래, 맞아. 그 여자들은 말을 하지 않아. 그저 빨래만 하지. 안, 나하고 약속하자. 다시는 그 다리 근처에 가지 않는다고. 밤에는 절대로 안 간다고 말이야.”

아버지는 몹시 걱정했다. 하지만 안은 아버지를 안심시키려고 대답을 할 때 이미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알았어요. 아버지, 노력할게요.”

아버지는 안심한 것처럼 보였다.

“약속한거다. 자, 그럼, 가서 자야지.”

안은 잠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금빛이 반짝이는 거울 동굴 속이었다. 그녀 앞에는 어떤 여자가 연한 붉은 빛의 긴 머리를 빗고 있었다. 빗질을 할 때마다, 빛이 흩어지며 탁탁 소리를 냈다. 여자의 앞머리는 휘날리며 안의 얼굴에까지 와 닿았다. 머리칼이 스칠 때면, 행복한 기운이 안의 목을 졸랐다. 여자는 말이 없었다. 얼굴도 없었다. 희미한 이목구비 위로 그저 미소가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안은 여자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손을 내밀어 그 여자를 만져보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는 멀리 있었다...


다음날 안은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났다. 하지만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며칠이 흘렀다. 다리에 다시 가지 않기로 약속한 것을 지키려고 애썼지만 강가에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 없는 사람, 예전에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 위로가 필요한 어떤 사람이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안은 아버지가 완전히 잠들기를 기다렸다. 안은 활과 단검은 놓아두고 피리만 챙겼다. 그녀는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조용한 밤이었다. 안은 무서워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잠시 후 그녀는 다리에 다다랐다. 이제는 친숙해진 그 소리가 들렸다. 물에서 건져 낸 덩어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빨래를 짜는 소리가 들렸다. 안은 강둑을 살펴보았다. 여자가 있었다. 이번에는 빨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감고 있었다. 강물 위에 떠 있는 머리카락은 안개 보자기 같았다. 여자는 그것을 크게 돌려서 건졌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손에 쥐고는 돌려 짰다. 안은 움지이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안은 마음 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을 모르나요? 왜 나를 보지 않나요?’

여자는 일어섰다. 몸을 길게 늘였다. 그리고는 다리 쪽을 향해 돌아섰다. 그녀의 지워진 얼굴은 미소로 떨렸다. 그녀는 눈길도 없었다. 안의 입술에서 어린 시절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그녀들은 서로 마주 보았다. 여자는 사라져 갔다. 강물 위에는 또 다시 안개가 떠다녔다. 안은 무척 피곤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안은 슬펐다. 아버지가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안이 소리쳤다.

“아버지, 어젯밤에 엄마를 만났어요.”

아버지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엄마 얼굴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 어젯밤에, 아버지와 한 약속을 어기고 다리 위에 갔었어요. 내 마음이 엄마를 알아보았어요. 내 마음, 내 숨결,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말이에요. 그런데 여전히 엄마의 얼굴은 보지 못했어요. 엄마는 아주 가까이에 있었어요. 그리고 엄마는 가 버렸어요.”

“너에게 아주 가까운 것처럼 보이지만, 엄마는 사실 아주 멀리 있단다. 인간이 단 한 번 밖에는 넘지 못하는 경계선 너머에. 그리고 너는 이쪽에 있지. 살아서 말이야.”

“그러면 엄마는 어떻게 돼요?”

“걱정하지 마라. 엄마는 네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저승의 문턱에 자꾸 가지 마라. 너는 이승에 살아야 한단다. 태양의 나라에 말이야.”

한동안 안은 겉보기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엄마가 영원히 저승의 포로로 있을 거란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기억할 수 없는 엄마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안은 다시 뒷문으로 빠져 나갔다.

엄마가 그곳에 있을까? 다리 위에 가서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여자가 부드럽게 날아서 나타났다. 마치 키스를 보내는 듯이 손바닥을 펼쳐 ‘후우’하고 한숨을 불어 날렸다. 그때 안은 무심결에 피리를 꺼내어 불었다. 안은 강물 위로 줄을 하나 던졌다. 그 줄이 여자의 몸을 감겼다. 손목에, 허리에 감겼다. 그 때 안이 기대했던 일이 벌어졌다. 여자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마를 저 저주받은 강에서 건져 이 세상으로 데려오고 말테야.”

피리는 매우 아름다운 가락을 노래하였다. 여자는 있던 자리를 조금씩 조금씩 떠나, 강의 가장자리를 따라 쭉 끌려왔다. 여자가 다리에 거의 다다랐을 때, 안은 뒤로 돌아서서 마을로 향하였다. 안은 천천히 걸었다. 그녀의 뒤에 희미한 형체가 딸려 왔다. 하지만 그것은 꽤 무거웠다.

“놓치면 안돼.”

안은 혼잣말로 다짐했다.

“안, 뒤돌아 보지도 말고, 피리도 멈추면 안 돼. 엄마가 다리 위에 올라왔을 때 당겨야 해. 엄마가 이쪽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때야 봐야지.”

드디어 마을로 가는 길이 보였다. 안은 거의 도착했다. 한 발짝만 더, 한 발짝만 더... 안은 잠시 숨을 돌렸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깨 너머로 살짝 눈길을 주었다.

망령이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살짝 볼까 말까 했을 뿐인데 그렇게도 보고싶던 얼굴이 사라졌다. 안은 혼자 남았다. 그녀의 입에서 피리가 떨어졌다.

그 때 아버지의 단단한 두 팔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큼직한 손이 그녀를 안고는 머리를 쓰다 듬었다. 안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한참 후 그녀가 의식을 찾았을 땐 신기하게도 몸이 가뿐하였다.

아침 식사는 맛있었다. 아버지는 그날 일하러 가지 않았다.

“우리 바람 쐬러 가요.”

안이 제안했다.

“그러자꾸나”

아버지는 대답했다.

안은 허리에 피리를 찼다. 다리 입구에 도착하자 안은 갑자기 멈추어 섰다.

그녀는 너무나 놀라 얼어붙었다. 빨래터 가까이에, 여자가 머리를 흔들면서 털어 날리던 그 자리에,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반짝이는 잎이 무성하게 달린 버드나무였다. 나뭇가지는 땅에까지 늘어지면서도 강물에도 닿아있어, 마치 머리카락이 강물 위에 떠있는 것 같았다.

안은 아버지의 손을 놓고 다리 저편으로 달려갔다. 버드나무 가지를 헤치고, 그 눈부신 잎사귀 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오랫동안 나무껍질에 빰을 댄 채 나무 몸통을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에 등을 기대어 섰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연한 붉은 빛이 그녀를 살짝 건드렸다. 안은 생각했다.

‘더 이상 이 강가에는 고통받는 영혼은 없을 거야. 더 이상 밤에 빨래하는 여자도 없을 거야. 엄마는 안식을 얻으셨어.’

   


- 세계 민담 전집 프랑스 편 (황금가지 출판사, 2003)에서 -